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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이번엔 혼자 한치를 잡으러 나섰다. 평소 자주 가던 애월·한림 쪽이 아니라, 제주시 동쪽의 새로운 포인트를 하나씩 훑어보기로 했다. 같은 제주라도 방향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낚시가 펼쳐진다는 걸 이번 탐색으로 다시 한번 느꼈다.
화북포구, 삼양방파제, 신촌포구 – 동네 꾼들의 벽
가장 먼저 간 곳은 '제주항 동부두'라 불리는, 제주항 여객터미널 뒤편 방파제였다. 진입 거리가 너무 멀고 난간 높이도 상당한 데다, 동네 낚시꾼들이 사다리와 과수원 상자를 자물쇠로 묶어놓은 흔적을 보니 만만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킥보드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일찌감치 자리를 선점하러 오는 이들을 보고는 조용히 철수했다. 뜨거운 날씨에 그 긴 시간을 버틸 자신도 없었고, 낯선 포인트에서 굳이 무리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제주항 동부두모습.

발길을 화북포구로 돌려 자리를 잡고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해가 지자 조사들이 한두 명씩 자리를 채우더니 어느새 5미터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한치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날은 하필 먼바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칠고 파도도 높았다. 옆자리 조사님이 세 마리쯤 잡는 동안 나는 딱 한 마리만 올렸다. 아쉬운 하루였다.
다음 날 삼양방파제는 이미 동네 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신촌포구는 포구 수영으로 핫한 곳이라 주차부터 만만치 않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등대 근처에서 캐스팅했지만 한치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동네분도 꽝, 나도 꽝. 그날은 술안주 할 한치가 없었다. 이틀 연속 빈손으로 돌아서니 슬슬 조바심이 났다.
화북포구에서 바라본 제주항.

바람길 따라 옮겨 다닌 하루
다음 날은 벌낭포구를 둘러봤지만 해질 때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다음으로 미뤘다. 그러던 중 애월항에서 전갱이를 잡고 있다는 지인 소식에 그쪽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이미 30여 마리를 잡아둔 상태였다. 이런저런 낚시 얘기를 나누다 지인분은 서귀포로 무늬오징어를 잡으러 떠났고, 나는 전갱이 세 마리를 미끼용으로 챙겨 한림방파제로 갔다.
그런데 이번엔 남서풍이 불어서 캐스팅 자체가 어려웠다. 제주 바람은 아직 거셌다. 다시 포인트를 옮겨 대수포구로 향했다. 여기는 등바람이 불어서 캐스팅하기 딱 좋았다. 제주는 지형 영향으로 포인트마다 바람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날만큼은 대수포구가 정답이었다.
대수포구, 드디어 손맛을 보다
낚싯대 하나엔 한치 채비를, 다른 하나엔 무늬오징어 채비를 걸었다. 불과 10여 미터 앞에서 전갱이를 미끼로 800그램짜리 무늬오징어가 걸렸다. '한치가 붙어주길 기대했는데' 싶었지만 무늬였다. 조금 더 먼 곳에서는 900그램짜리 무늬오징어가 또 올라왔다. 오늘 안주거리는 이미 확보한 셈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치 채비 쪽 낚싯대가 쑥 들어갔다. 당겨보니 진짜 한치였다. 며칠을 여러 포구에서 허탕만 치다가 만난 손맛이라 더 짜릿했다. 오늘 안주거리 사냥은 대성공이었다.
한치가 한마리 더올라올까 싶어서 몇번의 캐스팅을 더 해보았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바람은 더 강하게 불기만 하고 물은 빠져서 수위는 낮아져서 더이상은 무리였다.
대수포구는 한번더 탐사해봐야 할 포인트다.
늦은 밤, 소주 한잔의 이유
서귀포 집까지 오는 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편의점에 들러 한라산 소주를 사고, 오징어와 한치를 손질해 회를 떴다. 이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한치는 정말 맛이 기가 막히다. 얼마 안 되는 한치에 소주 한잔, 무늬오징어는 회로도 초밥으로도 튀김으로도 늦은 밤 배를 채웠다.
누군가는 힘들게 왜 그러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좋다. 낚는 즐거움도 좋고, 많이 못 잡아도 직접 잡은 한치로 소주 한잔 하는 이 즐거움은 세상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 여러 포구를 헤매고, 바람을 피해 옮겨 다니고, 꽝을 맞기도 하지만 결국 그 끝에서 만나는 한 마리가 그날의 여행을 완성시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주가 주는 즐거움은 매번 다르지만, 결국 나는 제주 바다가 주는 싱싱한 해산물에 소주 한잔 하는 이 순간 때문에 제주가 좋다. 화북포구의 파도, 신촌포구의 침묵, 한림방파제의 거센 바람, 그리고 대수포구에서 만난 손맛까지 — 하나하나가 다 제주 낚시의 얼굴이었다. 다음에 또 이 계절이 오면, 어느 포구에서 또 어떤 손맛을 만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