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를 닮은 중장비
“어디야?”
“나?신작로!”
친구끼리 통화할 때 가끔 쓰던 표현이다.
그렇다. “신작로” 예전 어르신들이 새로운 도로가 생긴걸 보통 신작로라 했다.
나는 30년 넘게 이 신작로를 공사하러 다녔다.
군 입대 후 부여받은 주특기가 564 그레이더병과 였다.보통 무엇인지 잘 모른다,
도로를 건설 하는 것은 많은 인력과 자재 그리고 공정별 각종
중장비가 동원 되서 이루어지는 국가적 사회간접자본 건설이다.
바퀴가 6개 달려있고 4미터에 달하는 길다란 작업장치 삽이 달려있다.
보통 사마귀를 닮았다고 표현도 한다. 덩치도 꽤나 크다.

도로는 보통 성토(흙을 쌓음)나 교량, 터널을 만들고 배수를 잘하도록 설계하여 공사를 한다.
이런 토목 현장을 30년 이상 많은 현장을 돌아다녔다.
도로는 반듯하게 요철이 없어야 되는데 그레이더란 장비가 길을 반듯하게 다듬고
배수가 잘되도록 도로의 각도를 조절해서 마지막으로 모양을 잡는 화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기계가 인간이 만든 중장비중에서 숙련도를 이루기가 극한에 가깝다.
센서나 측정장치의 도움없이 오직 인간의 감각만으로 각도와 높이를 손끝으로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군제대후 근무하면서 수없이 구박받으면서도 갈고 닦아 기술자 소리를 들을수 있었지만
정말 초보자는 1년을 가르쳐도 앞으로 전진 하는 것 조차 힘들 정도니 짐작 해보시길.
영정도 신공항(지금의 인천국제공항)초기 공사현장,서해안고속도로,동서고속도로,많은 택지개발현장,시골 마을도로 확장현장등 정말 전국을 다니며 일을 하고 살아왔다.
1996년, 아직 흙길이 많던 대한민국
1996년만 해도 대한민국 전체 도로 포장률은 약 72.7% 수준이었다. 고속도로와 국도는 대부분 포장이 완료되었지만 군도의 포장률은 40%에도 미치지 못해 지방 농어촌 지역에서는 비포장도로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현재 전국 도로 대부분이 포장된 것과 비교하면 불과 30년 전만 해도 도로 인프라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토목현장이 많지만 과거 대한민국은 전국이 공사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먹고 살수있었지만 말이다.
1996년과 현재를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도로 환경은 사실상 "다른 나라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6년만 해도 전국 도로 포장률은 72.7%에 불과했다. 시골 지역에서는 비포장도로를 흔히 볼 수 있었고 비가 오면 진흙길을 달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2020년에는 포장률이 94%를 넘었고 현재는 95% 이상으로 향상되면서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대부분의 도로를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30년 만에 대한민국 도로 환경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셈이다
도로가 신설되고 도로 연결망이 좋아 질수록 그 주변의 발전도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도로 옆 토지는 가격이 상승하고 대규모 택지와 주택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부동산은 변화를
겪는다.그 속에서 부도 창출이 되고 아픔도 창출이 된다.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산업화와 인간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 오는 건 사실이다.
2008년경 경매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할 때 특히나 제주도 물건은 관심 가던 주제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이 드는 부동산 가격이지만 말이다.
그때의 제주는 도로가 조금은 부실했고 역시 한참 도로건설공사가 많아지던 시기였다.
2008년 제주도는 지금처럼 땅값이 비싸지 않았다. 당시에는 바다가 보이는 토지나 중산간 지역 토지도 비교적 저렴하게 거래되었지만, 관광산업 성장과 각종 개발사업이 이어지면서 제주 토지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30년 전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오른 곳도 적지 않으며, 일부 해안가 토지는 수십 배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역시 도로망의 발달과 적지 않은 관계가 있다.
지금은 길보다 땅을 본다
지금은 제주 어디를 가도 깔끔한 도로가 정비 되어있지 않은가?
전국의 도로확충망은 육지뿐만 아니라 제주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생각된다.
나는 지금 공인중개사를 겸하고 있다.
부동산에는 입지조건이란게 있는데 그중 1번이 도로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공통부분이 많은 직업을 가지고있다고 생각된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날을 길 위에서 살았다.
젊은 시절에는 새벽 안개가 걷히지 않은 공사현장에서 하루를 시작했고, 해가 지고 나서야 장비 시동을 끄고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전국 곳곳을 떠돌며 도로를 만들었지만 정작 내가 지나온 길들을 다시 찾을 일은 많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내가 다녔던 현장들은 대한민국이 성장해 가던 과정 그 자체였다.
흙길은 아스팔트 도로가 되었고, 좁은 마을길은 왕복 4차선 도로로 바뀌었다. 길이 놓이자 사람이 오가기 시작했고, 사람이 모이자 상가와 주택이 들어섰다. 한적했던 시골 마을이 신도시가 되고, 이름조차 생소했던 곳들이 전국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기도 했다.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제주를 바라보던 시절과 지금의 제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도로는 훨씬 좋아졌고 접근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사람과 자본을 불러왔고, 제주라는 섬의 풍경마저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지금은 공인중개사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길이 들어설 자리를 보며 일을 했고, 지금은 길이 지나간 자리를 보며 부동산을 바라본다.
도로 하나가 생기면 사람의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면 땅의 가치도 달라진다. 그래서 부동산을 볼 때도 나는 가장 먼저 도로를 본다. 아마 30년 넘게 신작로를 만들며 살아온 직업병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운전을 하다가 잘 만들어진 도로를 만나면 무심코 노면 상태와 배수로를 살펴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눈이 먼저 간다. 그 길 위를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불편 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괜히 흐뭇해질 때가 있다.
비록 내가 만든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한민국 곳곳의 수많은 도로 공사 현장에 작은 힘이라도 보탰다는 사실은 꽤 오래 남을 자부심인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제주의 어느 해안도로를 달리게 된다면, 나는 바다보다 먼저 그 길을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릴 것 같다.
"참 많이도 달려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