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피프티는 시니어를 거부한다, 나도 그랬다(50대가 시니어라는 말을 낯설어하는 이유, 제주 50대의 여가 이야기, 제주 세컨하우스를 선택한 이유)

by bluecityman 2026. 8. 14.

 

"시니어 전용"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내가 50대인데. 노안도 왔고 무릎도 예전 같지 않은데, 그래도 그 단어가 나를 가리키는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24년 서울대 소비트렌드센터가 공식 화두로 꺼낸 개념이 바로 '영피프티'다. 그리고 그 핵심은 딱 한 줄이었다. "시니어를 시니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시작이다."

 

영피프티 이미지

■ 50대가 시니어라는 말을 낯설어하는 이유

김난도 교수는 영피프티를 "단지 젊게 사는 시니어가 아니라 세대에 얽매이지 않는 탈세대형 인류"라고 정의했다. 24세 취업, 30세 결혼, 60세 은퇴라는 순차적 인생 모델이 사라졌고, 나이가 인생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끝났다는 거다. 실제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는 평균 나이는 52.8세다. 은퇴 이후 삶이 30년 가까이 남는다. 영피프티는 그 30년을 노후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평균 연령은 1990년 29.5세에서 2017년 41.2세로, 2035년에는 49.6세까지 오를 전망이다. 고령 인구가 청년보다 많아지는 '슈퍼 에이지'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뜻이다. 1951년부터 1980년 사이 태어난 세대만 국내에 1800만 명. 이들을 '그랜드 제너레이션'이라 부르는데, 오랜 기간 경제활동을 하며 자본을 쌓은, 소비 여력이 역대 가장 강한 세대로 꼽힌다.

데이터도 그걸 뒷받침한다. 2022년 기준 50대 이상의 카드 매출 증가율은 17%였다. 같은 해 20~40대 증가율 11%보다 6%포인트 높다. 온라인 쇼핑몰 매출 증가율도 50대 이상이 38%에 달해서,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세대가 됐다. 쿠팡 결제자 비중도 50대 이상(29.5%)이 이미 30대(29.2%)를 앞질렀다. 오픈서베이 2024 시니어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50대 이상의 32.8%가 "사람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늘리고 싶다"고 답했는데, 이는 40대 이하(25.9%)보다 높은 수치다. 쉬고 싶은 게 아니라 더 많이 연결되고 싶다는 거다.

GS리테일 임원이 한 말이 나한테는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요즘 50대는 루테인보다 선글라스를 더 많이 산다." 눈 건강보다 내가 어디 가서 뭘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한다는 거다. 나도 그렇다. 시니어는 노화를 관리하고, 영피프티는 삶을 설계한다. 그 차이가 크다.

■ 제주 낚시를 새로 배운 50대의 여가 이야기

영피프티 세대의 여가는 패키지 관광 대신 장기 체류형 여행으로 바뀌고 있고, 수동적인 문화 소비 대신 클래스와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예, 음악, 미술, 글쓰기 같은 '배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단순 취미를 넘어서 자기 정체성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거다. 나도 비슷하게 됐다. 2020년 10월, 5개월짜리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하면서다.

처음엔 그냥 아름다운 바다 보고 한치나 무늬오징어 실컷 잡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막상 살아보니 달랐다. 계절마다 대상 어종이 바뀌고, 채비 방법도 포인트 선정 요령도 육지랑 완전히 달랐다. 현지 조사님들한테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날씨와 바람이 큰 변수라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날이 많았다. 눈보라 치는 날은 아예 포기하고, 강한 바람에 포인트 이동하다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 과정이 재밌었다. 배우고, 실패하고, 현지에서 관계 맺는 과정 자체가 여가였다. 오픈서베이 조사를 보면 시니어들이 주로 교류하는 대상은 가족(82.7%), 학교 동창(55.5%), 직장 동료(54.3%) 순이다. 그런데 나는 제주에서 전혀 새로운 관계망을 하나 더 만든 셈이다. 조사님들, 한달살이 이웃들, 동네 상인들. 익숙한 관계 밖에서 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영피프티 여가의 한 축이다.

지금 제주에 가면 아침에 해변 올레길을 걷고, 낚시 나가고, 섬을 천천히 구경하며 다니는 게 일상이다. 한치회, 무늬오징어, 방어, 문어, 갈치를 잡은 날 바로 싱싱하게 먹는 것도 육지에선 못 하는 경험이다. 여가가 조용해진 게 아니라 깊어졌다. 그게 영피프티가 말하는 '직접 참여하는 여가'랑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 10억 집 대신 제주 세컨하우스를 선택한 이유

5개월 살고 나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시간 날 때마다 여기 오고 싶다. 그러려면 거점이 필요했다. 나는 공인중개사라서 직접 매물을 뒤졌다. 경매도 보고 일반매물도 봤다. 주변에서 다들 "해변가 주택은 돈이 엄청 들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6700만원짜리 14평 빌라를 샀다. 인테리어에 집기류까지 다 합쳐서 1억2천. 그 집을 비워두는 기간엔 한달살이 월세로 내놓으면 월 100만원, 연 5개월 이상 수입이 생긴다. 이 얘기를 주변에 했더니 동료와 지인들이 비슷한 금액으로 벌써 4채를 샀다.

영피프티는 왜 시니어를 거부할까. 오픈서베이 조사에서 답이 보였다. 시니어 10명 중 5명이 현재 삶에 만족하는데, 그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은 "좋은 경제적 여건"과 "외부 활동·소통의 기회" 두 가지였다. 큰 집이 아니었다. 같은 조사에서 50대가 가장 크게 꼽은 고민은 노후 불안이었다. 나는 그 불안을 큰 집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풀었다. 일상과 돈에 모든 걸 갈아 넣는 방식이 불행하다는 걸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안다. 늙어서 힘없으면 이런 경험을 못 해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뭔가 달라진다.

10억짜리 집에 살기보다 7억짜리 집에 살고 제주에 3억짜리 집을 사도 나는 그냥 나잖아.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시간이 나면 제주행 비행기를 먼저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