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법환포구
유럽여행 대신 시작한 제주 한달살이.
처음에는 한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제주에서 살아보니 한 달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 달을 더 연장했다.
두 달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그런데 어느새 세 달째.
이상하게도 제주 생활은 질리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026년 6월이지만, 이 이야기는 2020년 12월의 제주 이야기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지만 제주 날씨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제주라고 하면 따뜻한 남쪽 섬을 떠올리기 쉽지만
겨울의 서귀포는 전혀 달랐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육지 못지않게 추웠다.
법환포구가 있는 법환동에서 지내던 어느 날 아침, 창밖을 보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제주에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곳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날씨마저도 제주에서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 갔다.

제주행 비행기에서 본 목포 영산강 ?꼭 인삼같아서 찰칵~~

제주 서귀포에 눈이 이렇게나 원래 오는겨?
~
우리가 머물던 법환동 펜션은 햇볕도 잘 들고 온수도 넉넉하게 나오는 좋은 숙소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난방이었다.
심야전기를 이용하는 보일러였는데 이상하게도 낮에는 방이 찜질방처럼 뜨겁고 밤에는 썰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래된 보일러라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을 지내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주인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이미 기술자를 불러 손을 봤지만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근데 아저씨가 타이머를 사다놓으시구 달지를 못하시네
열을 축적을 해야 따뜻한데 온도조절기가 방이 아닌 보일러실에 있었고, 순환모터 역시 제대로 제어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타이머를 이용해 낮에는 짧게, 밤에는 길게 순환하도록 직접 조정해 보기로 했다.
낑낑거리며 설정을 마치고 하루를 보내봤다.
결과는 대성공.
방바닥이 따뜻해지자 아내는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찾아왔다.
"옆방에서 민원이 들어왔어."
"왜요?"
"발바닥 데겠다고 난리야. 온도 좀 낮춰봐."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2.범섬에 반하다

법환포구에서 올레길을 살짝쿵 걸으면 환상적인 범섬을 볼수있다
~
난 저모습에 완젼 반했다
~
법환동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다 풍경이었다.
특히 법환포구에서 올레길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범섬이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기억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바다와 그 뒤에 우뚝 서 있는 범섬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법환포구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포구였다.
영화 '홍반장'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영화를 다시 보면 지금과는 또 다른 법환포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3.제주에서 기술자를 찾는다는 것
제주 생활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는 지붕 위에서 폭포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 보니 심야온수기 보조 물탱크의 연결 호스가 얼어 터져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상태를 확인했다.
주인아저씨도 난감해하고 있었다.
부품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온수실에 있던 여분 부품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
간신히 물난리를 막고 내려오니 주인아저씨가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서는 생각보다 기술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벗어나면 출장 자체가 쉽지 않고 비용도 꽤 비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참에 제주로 이사 올까요?"
주인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밥은 안 굶을 거야."

4.제주살이의 진짜 매력
법환동에서의 겨울은 화려한 관광보다 소소한 일상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올레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와 참돔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고, 아내는 딱새우를 맛있게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집 안은 따뜻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여보, 다음 달에도 그냥 여기 있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는 한 달이었던 제주살이.
두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제주살이.
하지만 어느새 세 달이 되어도 떠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제주 한달살이의 진짜 매력은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보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