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이 장보기 습관이다. 서울에서 마트 카트를 끌던 손이, 이제는 새벽 알람을 맞추고 항구로 향한다. 제주살이의 진짜 시작은 어쩌면 냉장고를 채우는 방법을 바꾸는 데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제주는 섬이다. 유통 구조가 육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택배 하나도 항공이나 배편을 거쳐야 하는 곳이다 보니, 오히려 현지에서 직접 사면 육지보다 훨씬 싸고 신선한 수산물을 만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제주에 직접 살면서 몸으로 익힌 현지 수산물 구매 노하우를 솔직하게 공개한다.

새벽이 기회다 — 서부두·서귀포항 수산시장 완전 공략
제주에서 수산물을 가장 싸게 사는 방법은 새벽에 항구로 나가는 것이다. 당일 조업을 마친 어선이 들어오고, 경매가 끝난 수산물이 바로 풀리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제주시 서부두 수산시장은 새벽 6시에서 7시 사이가 핵심 시간대다. 은갈치, 한치, 고등어, 자리돔이 소쿠리에 담겨 줄줄이 나온다. 관광객용 수산시장이 아니다. 현지 식당 주인들과 제주 토박이들이 장을 보러 오는 살아있는 시장이다. 갈치 한 박스를 사서 손질을 맡기면 손질비가 따로 붙지만, 그래도 일반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다. 박스째 구매한 갈치를 택배로 육지 가족에게 보내는 것도 가능하고, 포장 스티로폼 박스도 시장 안에서 구할 수 있다. 현금 거래가 기본인 가게가 많으니 현금을 넉넉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서귀포 쪽에 거주한다면 서귀포항 아침 갈치시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시장의 특징은 오전 9시까지만 운영된다는 점이다. 늦잠을 자면 그날은 끝이다. 당일 새벽에 잡아 올린 갈치가 직판되는 곳으로, 싱싱함과 가격 면에서 어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서귀포 주민이라면 일찍 일어나는 습관 하나로 밥상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직접 가보면 새벽 공기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갈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제주살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한림항 수협 수산물 코너도 서부두 못지않은 현지인 단골 장소다. 한림 지역에 거주하거나 그 인근에서 한달살기를 한다면 한림항 수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것을 권한다. 제주 서쪽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산물이 빠르게 공급되는 곳으로, 관광지와 거리가 멀수록 가격도 합리적이다.
마트도 경쟁한다 — 제스코·농협 하나로마트 수산 코너 활용법
제주에 살면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대형 마트의 수산물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점이다. 육지에서 마트 수산물은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제주는 다르다. 산지와 유통 거리가 짧으니 신선도도 높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제스코(JESCO) 마트는 제주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대형 마트로, 수산물 코너의 구색과 가격이 특히 경쟁력 있다. 제주산 생선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산물이 갖춰져 있고, 주말 특가 행사 때는 더욱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없는 지역에서도 제스코가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한다.
농협 하나로마트 수산 코너는 지역 어민과 협동조합이 연계된 구조라 가격 안정성이 높다. 특히 외곽 지역 하나로마트일수록 현지 어민이 직접 납품하는 비율이 높아 신선도가 뛰어나다. 고등어, 옥돔, 갈치 등 제주 대표 수산물을 제철에 맞춰 구매하면 가성비 면에서 손색이 없다. 수산물을 자주 구매하다 보면 담당 직원과 안면이 트이고, 입하 날짜나 특가 정보를 먼저 귀띔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이 제주살이의 또 다른 재미다.
5일장과 직거래센터 — 제주살이의 진짜 장보기 문화
제주의 5일장은 수산물과 농산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복합 장터다. 제주시 민속오일장(2일·7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인근 5일장, 한림 오일장(2일·7일), 대정 오일장(1일·6일) 등 지역마다 일정이 다르다. 날을 맞춰 나가면 현지 어민과 농민이 직접 가져온 물건을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덤을 얹어주는 인심도 오일장의 묘미다. 제주살이를 시작한다면 거주 지역 인근 오일장 날짜부터 달력에 표시해두는 것을 권한다.
제주시 농협 농산물 직거래센터는 제주지방법원 사거리 동쪽, 우성아파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50여 개의 농산물 가게가 한데 모여 있어 품질 비교가 쉽고 주차 공간도 넓다. 감귤,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같은 제주산 과일부터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등 밭작물까지 제철에 맞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하나로마트와 붙어 있어 한 번에 두 곳을 돌 수 있다는 것도 실용적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은 제주 곳곳에 운영 중이다. 농민이 당일 수확한 작물을 소분해 가져다 놓는 구조라 신선도가 매우 높다. 가격표에 생산자 이름과 마을이 적혀 있어 누가 키운 것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마트보다 20~30퍼센트 저렴한 경우가 많고, 제철 품목은 더 큰 차이가 난다. 제주에서 한 달 이상 살 계획이라면 집 근처 로컬푸드 직매장 위치를 먼저 파악해두는 것만으로도 식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제주살이의 밥상은 아는 만큼 풍성해진다. 새벽 항구의 은빛 갈치, 오일장 할머니의 손때 묻은 당근 한 묶음, 로컬푸드 매장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농부의 채소. 이 모든 것이 육지에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제주살이만의 특권이다.